2018년도 지금, ‘테크웨어(Techwear)’라는 명칭의 몸 전체를 검은색으로 휘감는 스타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고딕’ 스타일과는 달리 기능성과 수납, 내구성 등 의복의 본질이 고려된 일상복을 입는 것이 지금의 ‘테크웨어’이다. 지금부터 테크웨어의 대가로 불리는 ‘에롤슨 휴(Errolson Hugh)’부터, 그와 결을 같이하는 여러 브랜드들을 통해 테크웨어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크로님 ACRONYM, 에롤슨 휴 (Errolson Hugh)
‘에롤슨 휴’를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테크웨어계 대부’이라는 말이 딱 맞겠다. 그는 가장 진보적인 테크웨어 브랜드 ‘아크로님 (Acronym)’의 공동 설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이다. 처음에 그는 아내와 함께 스키복의 디자인을 담당 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때 그에게 생긴 아이디어가 있었다. 바로 스포츠웨어의 기술을 일반 의복에 적용 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의 생각은 ‘아크로님’이라는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에롤슨 휴의 아크로님’은 먼저 활동성을 고려했다. 바지를 예로 들면, 일반 기성 바지들은 표준 패턴으로 재단 되지만, 아크로님의 팬츠들은 인체의 움직임을 고려하여 패턴을 짠다. 즉, 사람의 해부학적인 부분까지 염두 한 것이다. ‘에롤슨 휴’는 무술 ‘가라데’를 수행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옷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아크로님’의 제품 홍보 비디오를 보면, 그가 직접 발차기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유럽인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에롤슨 휴가 살고 있는 독일 뮌헨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아크로님의 아우터들은 우산이 없어도 될 정도의 방수력을 지닌 뻣뻣한(하드쉘) ‘고어텍스’사의 원단을 사용한다. 많은 사람이 ‘고어텍스’를 기능성 원단을 지칭하는 단어로 잘 못 알고 있지만, 사실 ‘고어텍스’는 방수, 투습 기능을 가진 원단을 개발하는 브랜드 이름이다. 고어텍스 사에서 생산하는 섬유는 기능성 4대 요건인 방수, 투습, 발수, 속건 모든 요소를 충족 시킨다. 즉, 고어텍스사의 원단은 아크로님 뿐만 아니라 여러 테크웨어 브랜드들에게 ‘기능’을 끌어내 주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퀄리티가 좋은 만큼 단가가 높은 원단이기 때문에, 블랙같이 흔한 컬러가 발주에 용이하다. 그것이 아크로님에 블랙컬러의 아이템이 유독 많은 이유다.
세 번째는 수납이다. 앞서 말한 활동성과 외부 환경 보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이라면, 이번엔 수납이라는 정말 실용적인 기능을 탑재했다. 수납에 관하여 에롤슨 휴에게 모티브가 된 건 ‘밀리터리 웨어’였다. 군인들은 많은 물건을 소지 해야 하고, 빠르게 꺼낼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 군복은 여러 다양한 크기의 포켓이 손과 가까운데 위치해있다. 에롤슨 휴 역시 그에 힌트를 얻어 다양한 부피의 물건을 수납할 수 있게 많은 포켓이 달린 의류를 디자인했다. 실제로 이를 응용하여, 해외 매니아들은 아크로님 대용으로 ‘택티컬 511(Tactical 511)’이라는 미국 군용 브랜드의 제품을 많이 착용한다. 만약 저렴한 가격에 테크웨어를 입문하고 싶다면, 실제 밀리터리 웨어를 찾는 것도 좋은 팁이다.
앞서 말한 아크로님의 세 가지의 주요특성만 봐도, 아크로님의 엄청난 가격대가 단번에 수긍이 간다. (작년에 에롤슨휴 개인 인스타그램에서 가격 논쟁이 있긴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유튜브에 ‘Acronym Acrontmjutsu J1A GT V25 A’를 검색해보길 권한다. 안감에 내장된 로프를 이용해 가방처럼 메고 다닐 수 있음은 물론, 카라 부분에 이어폰을 붙일 수 있는 자석, 가방을 벗지 않고도 옷을 입는 등 그야말로 ‘테크웨어’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러한 멋을 알아본 유수의 브랜드들이 ‘에롤슨 휴’에게 손을 건네 왔다. 먼저 캐나다의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Arc’teryx)’의 ‘베일런스(Veilance)’라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으며,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의 ‘쉐도우 프로젝트(Shadow Project)’라인도 겹업 하고 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의 아크로님’이자 많이 알려진 ‘나이키랩 ACG (Nikelab All Condition Gear)’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최근 나이키와의 제휴가 종료됨에 따라 더 이상 ‘테크웨어’ 스타일의 나이키 ACG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나이키와의 연은 스니커즈 콜라보를 통해 꾸준히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오르빗 기어 ORBIT GEAR
‘오르빗 기어’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테크웨어 브랜드이다. 다만 특이한 것은, 메인이 되는 제품 군이 가방이라는 점이다. 사실, 수납공간이 많은 테크웨어 특성상 가방이 필수적인 아이템은 아니다. 하지만, 가방을 착용하므로 룩이 더욱 풍성해지며, 노트북이나 태블릿PC 같은 외부 충격에 약한 소지품을 들고 다녀야 한다면 가방이 넣고 다니는 것이 좋다. ‘오르빗 기어’는 소재에 대한 도전 의식이 강하다. 특히, ‘R200-SC’ 제품의 경우 호일 같은 질감을 보여주는 ‘다이니마(Dyneema)’ 패브릭을 사용했다. 이 섬유는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 방탄복의 주요 소재로 쓰인다.
앙펭 르베 ENFIN LEVE
앙펭 르베는 아크로님과 같은 독일 브랜드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테크웨어를 고수해온 브랜드는 아니며, 그때그때 트렌드에 맞는 의복을 생산한다. 과거 컬렉션을 보면, 지방시 같은 느낌의 의류와 릭오웬스 같은 무드를 보여준 적이 있다. 철새 같은 모습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옷을 대하는 태도가 가벼운 브랜드는 아니다. 기성복 시장에서 보기 드물게, 18ss 제품들은 쉘러 드라이스킨, 에타 프루프 원단 등 소재 커스텀 및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다.
라이엇 디비젼 Riot Division
우크라이나에 기반을 두고 있는 ‘라이엇 디비젼’. 타 테크웨어 브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이지만, 고가의 테크웨어 시장에서 나름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시즌 오프 세일 폭이 매우 큰 브랜드로, 입문자들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게릴라 그룹 Guerrilla Group
대만 브랜드인 게릴라 그룹. 아직 한국에선 외골수 느낌이 있는 테크웨어인 만큼, 접근성이 좋은 브랜드가 찾기 여간 쉽지 않다. 하지만, 게릴라 그룹은 국내 스토어인 ‘하이드’, ‘바스카’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고밀도 나일론 원단으로 테크웨어의 기본인 방수와 방풍은 물론, 주름에도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아크로님’으로 떠오르는 중인 게릴라 그룹은 분명히 좋은 선택지이다.
파이널 홈 FINAL HOME
엄밀히 얘기하면, 파이널 홈은 ‘서바이벌 웨어’에 가깝지만, 방향성은 테크웨어와 많은 부분 닮아있다. 파이널 홈은 ‘만약 우리가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집이 없어진다면, 옷이 집이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일본 브랜드이다. 일본은 언제나 지진과 쓰나미의 위협이 도사리는 곳이고, 이 브랜드 디자이너인 ‘츠무라 코스케(Tsumura Kosuke)’는 일본 열도의 지리적 특성에 맞게 파이널 홈 제품들을 설계했다.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인 롱 코트는 총 44개의 포켓을 가지고 있다. 혹한 시 여기에 쓰레기를 집어넣어 추운 겨울 보온성을 유지할 수 있다. 츠무라 코스케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파이널 홈 물건을 무료로 기부하기도 했다. 엄청난 기술력이 동반된 브랜드는 아니지만, 테크웨어처럼 넉넉한 수납공간, 신체 보호의 기능 측면에선 궤를 같이한다.
‘오뜨쿠튀르(Haute Couture)’가 입을 수 없는 예술 작품 같은 옷이라면, 테크웨어는 정반대 급부인‘극 실용주의’ 의류다. 입으면 입을수록 진가가 발휘된다. 아직은‘도둑이 입는 옷 같다.’라는 혹평과 비싼 가격, 정보 부족, 판매처의 부재 때문에 트렌드 정점에 등극하진 못했다. 하지만 점점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세계적으로 소수의 마니아층이 생기고 있다. 끊임없는 소재 연구와 기능성에 집착을 보이며 의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것. 그것이 ‘테크웨어’의 매력 아닐까?
CREDIT
에디터 김상수
포토 자료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