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가 고른 이 달의 책 :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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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여행자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그녀의 삶은 대부분의 시간이 여행으로 채워지곤 했는데, 그런 그녀를 보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여행이 왜 그렇게 좋을까? 어느 날 그녀에게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단순했다. ‘그냥, 좋아서!’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왜 여행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역시 쉽게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서점에서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이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소시켜줄 책을 우연히 만났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풀어낸 여행담이라기보다는 여행을 중심으로 삶의 의미를 풀어나가는 사유에 가깝다. 그는 책에서 우리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남겨두었던 상념의 자락들을 끄집어내 생기를 불어넣고, 그 정체를 밝혀낸다. 여행을 하는 이유를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여행의 감각을 일깨워주고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페이지마다 체크를 해 둘 정도로 버릴 내용이 없는 책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꽂혀 몇 번이고 다시 읽은 부분이 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 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51p)

나에게도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가 사방팔방 등장하고 도마뱀이 시도 때도 없이 천장에서 툭 떨어지던 험악한 숙소에서 며칠 묵게 됐을 때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하다가 전신 화상을 입어 여행 내내 제대로 먹거나 잠들 수 없었을 때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 때문에 고대했던 나의 여행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그런 것들이 그다지 싫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나는 마음만 먹으면 난처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정신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과, 그런 것 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상대적인 존재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퀴벌레 때문에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숙소에서 경험한 끝내주는 석양과 촉촉한 공기를 품은 이른 아침의 조식은 아직 내 마음속에서 꽤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녀온 지 2년은 더 지났지만, 여전히 그곳이 그립다.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 아름다운 책을 읽는다면 깊은 공감을 느끼며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고,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내가 강력하게 바랐던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이 여행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일단 읽자.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자.


EDITOR 구자현
PHOTO 자료제공